소프트웨어 팀을 코칭한다는 것

연구소장으로 몸담아왔던 직장을 갑작스레 퇴직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연구원들이 찾아온다.
왠지 뭉클하면서도 최악의 관리자였던 내가 조금은 나아졌나보다 하는 위안도 든다.

개인적으로 10여년 간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관리자로서 몇 가지 시기를 거쳤다.

제 1기는 관리자를 맡은 개발자.

이때는 관리자라기보다는 개발자였다.
정체성이 개발자인데 수십명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팀원들을 코칭한다거나 친밀감을 개선한다거나 하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직 관리는 스스로의 목표에 들지도 못했던 것이다.
늘 조직의 소프트웨어 미션에만 신경을 쓰고 팀원들의 성장이나 상태에는 전혀 신경을 쓸 줄 몰랐다. 팀원들의 코드에 문제가 있으면 내가 다시 짜버리지 하는 생각이 컸었고, 스스로가 메인 코더였고 실제 백만 LoC에 달하는 코드를 작성했던 시기였다.
아마도 당시 팀원들은 황무지에 버려진 처지로 생각하면서 매니저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인 취급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ㅠ_ㅠ

제 2기는 코칭을 처음 해보는 난폭한 관리자

이때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가능하면 스스로 하는 코딩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팀원들을 코칭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수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팀원들을 데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매우 힘든 미션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아무런 경험없는 신입 팀원들을 하나씩 코칭하면서 가장 비효율적인 접근을 했다.
신입 팀원들의 결과물들은 소프트웨어 경험이 이미 십년이 넘은 사람이 보기엔 너무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이를 극복하고 결과를 만들려는 당위성에 짓눌려 몹시 공격적으로 팀원들을 다그쳤다. 팀이 전체적으로 회사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팀원들의 상실감이 매우 컸다.
결국 신입 팀원들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나아졌고(원래 걸리는 시간만큼 지나서.. 결국 강압은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확인), 이 과정에서 몇몇 팀원들은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물론 이미 안정이 된 다른 팀들은 이렇게 대하진 않았다.

제 3기는 엄청난 챌린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평가만 하는 관리자

이때는 연구소가 새로 만들어지고 그 책임자로서 초기부터 엄청난 챌린지를 받았다.
엄청난 프레셔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당혹함이 그래도 팀원들에게 전달되던 시기였다.
이때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서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로 팀원들의 한 일들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하는 데 그쳤고, 기술적으로 벽에 부닥친 많은 팀원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냉혹함만 남았고 함께 벽을 깨쳐나가는 데는 매우 부족했다.

마지막 4기는 코칭에 집중하는 관리자

4기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팀을 둘 동시에 빌드업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앞의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관리자는 단순 평가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가자가 아니라 늘 한 배를 타고, 그 키를 잡은 사람이 되는 것.
팀원들이 방향을 아예 잡지 못하거나 벽에 부닥쳤을 때에는 직접 같이 연구하여 방향을 잡아주거나 벽을 뚫어줄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관리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포함하게 되었다.
또 문제를 푸는 것은 팀원들의 성장을 기반삼아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팀원 한명 한명의 상태를 체크했다.
신입 팀원들만으로 구성된 팀이 둘이나 있어서 이 팀들은 더욱 조심해서 빌드업을 했다.
출발점은 신입이든 아니든 스스로의 진행 상황과 생각을 먼저 얘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팀원의 의견을 유의미한 것으로 발전시켜나가도록 계속 의견을 보태주고, 방향이 잘못되지 않고 깊이를 찾을 수 있도록 팀장들과 얘기해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팀원들은 너무 수준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 현학적인 말들을 옮기기만 하고 자신의 문제를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또 어디에나 있듯이 자아가 너무 강해서 주장만 강하고 타인의 의견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함께 일해야 하는 특성이 있는 소프트웨어 조직에 매우 부적합하다.
대부분은 코칭을 통해 개선이 되었지만 일부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뒤처지거나 문제가 있는 멤버들에게 낭비하지 않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포기를 하고 추후 개선이 보이면 다시 미션을 보완해주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고는 좋은 아이디어를 팀에서 구할 수 있었고 각 팀원들의 성장도 팀웍을 통해서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수준의 팀원들의 멘토링에 성공하고 자신감을 끌어낼 수 있었으며, 전체 팀으로서도 어느 정도 괜찮은 아이디어를 빌드해낼 수 있었다.)

코칭과 학습 능력

학습 능력이 중요한 시대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Google이나 페이스북처럼 완성된 최고의 엔지니어를 쉽게 리크루트할 수 없다. 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서 팀웍을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들어가야 한다.
관리자의 코칭 능력 없이는 이러한 성장은 매우 더디고 개인에 맡겨질 뿐이다.
경험을 통해 보면 개인이 열심히 책을 읽어서 깨닫는 것은 매우 더디고 지식의 이해도도 떨어진다.

여러 명의 아이디어가 합쳐지고 고쳐지는 숙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간신히 만들 수 있다.

흔히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이 학습 능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라고 한다.
관리자들도 관리의 목표 설정이 중요한데 그 관리 목표 중 하나는 코칭이다.
교육도 주요 관리 목표 중 하나이긴 하지만, 실제 업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코칭이 일반적으로 훨씬 더 팀원들의 기술적인 성장에 도움을 준다.

창의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오래도록 고민해왔는데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고 토론을 통해 조탁하고, 그 결론을 만드는 과정이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기술의 짜릿함만큼이나 이 일을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창의를 만드는 팀을 향한 목표는 여러 경험들 속에서도 바뀌지 않을 중요한 목표이다.
많은 깨달음을 준, 함께 했던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모두 많은 성취를 이루길 바란다.

코치들에게 당부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와 같은 복잡한 지식 노동을 담당하는 기술 매니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한 가지가 있다.
소프트웨어 같은 문제엔 정답이 없다.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갈래길이 펼쳐질 수 있다.
코칭을 할 때 하나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음을 열어주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팀의 결정이란 최선의 답을 향해 컨센서스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팀원들의 성과가 지지부진할 때 혹은 팀 전체가 지지부진할 때에는 팀을 탓하지 말고 코치가 스스로 그 답의 방향을 찾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닫힌 길을 열어주고, 빛의 느낌이라도 전달해줄 수 있는 코치들이 되기 위해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방법을 항상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길 바란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영화 Interstellar 중에서)
팀을 만든다는 건 이 always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P.S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면 다음을 꼭 실천해보길.

  1. 항상 먼저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본 후 묻고 듣고 공부하라
  2. 가장 뛰어난 사람의 판단 방식을 훔쳐라. 아키텍처는 책에서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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